한바탕 비가 퍼붓고 간 자리엔 짙은 빗자국만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자연스럽게 살을 베는듯한 차가운 바람결이 함께 자리했다. 보통보다 조금 더 빠른 추위가 불어온 겨울의 시작. 그리고 하얀 눈은 무언가의 이질감과 기괴함을 당연하다는 듯이 빛냈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 여느 해의 겨울보다 빠르게 내리는 눈. 그리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큰 사건. 나름 영향력 있는 도시의 주소를 가지고 있는 이 고등학교는, 산 아래에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릴 지켜온 이 학교는 올해 다섯 번째로. 학생이 실종되는 사건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경기도 기원 시 신건 2로 215, 기원고등학교.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사립학교로. 매해 60명 이상을 명문대학교에 입학시키는 명문 중에 명문으로 손꼽히는 곳. 까다로운 절차, 까다로운 조건으로 매해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이 학교는, 이사장의 뜻을 받아 매해 장애우 학생도 몇몇 입학시키곤 했었다. 2015년도 기준. 장애우 학생이 2명 신입생으로 입학하였으며. 2학년 학생이 1명. 3학년 학생이 2명이었으나. 5명의 학생 전부. 실종자 처리되어버렸다. 전부 여학생. 그것도 몸이 불편한 학생들만이 사라진 이 사건은 기원 시의 이슈 사건이 되는듯했으나. 언젠가부터 더는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실종학생들의 부모는 오열했지만. 그 뿐이었다. 남아있는 학생들은 언젠가부터 자신에게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잊게 된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공부만을 할 뿐이었다.
청명 자습반. 기원 고등학교 내부에서도 소수의 우수학생만이 소속되는 특별반으로. 실종학생 중 단 한 명. 이 자습반에 소속된 적이 있었다. 이 자습반에선 1년에 한 번. 합숙을 통한 학생들 간의 친목 다지기류의 행사를 하곤 했고.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일정엔 변함이 없는듯하였다. 11월 2일. 합숙이 예정되어 있는 날. 자습반 소속이 아닌, 본래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이 일정에 몇몇 참가하는듯하였고. 이때까지도 추운 겨울의 시작은. 변함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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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었을 사람들이 사라졌는데도.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를 악물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빈 교실의, 주인 잃은 책상에 앉아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큰소리가 울렸고. 그뿐이었다. 누군가의 분노를 눈으로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릴 흘렸다. 흘려지는 소리 끝엔 물기 가득한 울음소리가 자리했다. 한참 오열 섞인 울음을 뱉어내곤, 누군가는 자리를 옮겼다. 누군가에겐 춥고, 시린 겨울은. 더욱. 더 시리고 아픈 겨울이었다.
" .. 사실 알고 있었어. 지금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모두가 알아야 하는 일이니까."
" 내가 복수할게. "
빈 교실, 주인 잃은 책상의 위엔 하얀 국화꽃이 자리 잡았다. 누구도 올려두지 않았던 꽃 한 송이가 자리 잡은 교실엔. 그 은은한 향기만이 대신 자리하게 되었다.